명리수필, 음양이 교차하는 인생
밝음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사람들은 대체로 밝은 것을 좋아한다. 햇빛, 웃음, 성공, 활력, 드러남과 같은 것들을 삶의 좋은 모습이라 여긴다. 반대로 어둠과 침묵, 멈춤과 고독은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야 할 상태처럼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나 긍정적이어야 하고, 계속 움직여야 하며,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명리학에서 세상은 양(陽)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양이 밖으로 뻗고 드러내는 힘이라면, 음(陰)은 안으로 모으고 품는 힘이다. 양이 움직임이라면 음은 멈춤이고, 양이 말이라면 음은 침묵이다. 어느 하나가 선하고 다른 하나가 악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움직임이 만나 생명을 이룬다. 낮이 계속되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햇빛 아래에서 일하고 움직이려면 밤의 어둠 속에서 몸을 쉬어야 한다. 씨앗도 밝은 공중이 아니라 어두운 흙속에서 싹을 준비한다. 생명은 보이는 곳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사람의 삶도 그러하다. 밖으로 나가 일하고 관계를 맺는 시간은 양의 시간이다. 자신을 표현하고 성취하며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끊임없이 바깥으로만 향하면 마음은 점차 비어 간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많은 말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은 듣지 못할 수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음의 시간이다. 혼자 머물고, 말을 줄이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음은 삶의 후퇴가 아니다. 흩어진 마음을 다시 모으는 일이다. 세상에서 받은 수많은 자극을 가라앉히고, 무엇이 나에게 정말 중요한지를 살피는 시간이다. 하지만 음도 지나치면 삶은 정체된다. 지나친 생각은 두려움이 되고, 신중함은 망설임으로 변한다. 상처를 피하려고 마음을 닫으면 안전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인연도 들어오지 못한다. 침묵이 깊어지면 지혜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표현하지 못한 원망이 되기도 한다. 양도 마찬가지다. 활동력은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