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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 역사, 송나라 명리학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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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대 명리학은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바꾸었는가 ― 고대 시간 사유의 집대성과 ‘개인 운명 해석’의 탄생 ― 들어가는 말: 송대 명리학은 단절이 아니라 재구성이었습니다 송대 명리학은 흔히 “사주명리학의 완성기”로 불립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자칫 오해를 낳기 쉽습니다. 마치 송대에 이르러 갑자기 새로운 학문이 탄생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송대 명리학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 학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은·주·한·위진·당을 거쳐 축적된 시간 사유를 개인의 삶에 맞게 재구성한 결과 입니다. 송대 명리학의 핵심은 “무엇을 새로 만들었는가”보다, 무엇을 계승했고 무엇을 의도적으로 바꾸었는가 를 살펴볼 때 분명해집니다. 이 글은 송대 명리학이 계승한 고대 전통과, 동시에 과감히 전환한 지점을 중심으로 그 사상적 성격을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송대 명리학이 계승한 것 시간은 질서를 가진다는 인식입니다 송대 명리학이 가장 분명하게 계승한 것은, 시간은 무작위가 아니라 질서를 가진 구조라는 고대의 인식 입니다. 이 인식은 이미 은나라 제사 문화에서 시작되어, 주나라 역법과 예(禮), 춘추전국의 역사 기록, 한나라의 음양오행론을 거치며 누적되어 왔습니다. 송대 명리학은 시간을 단순한 연속적 흐름으로 보지 않습니다. 시간은 분절되어 있고, 각 시점마다 서로 다른 기운과 성질을 가진다고 전제합니다. 이 사고는 한나라에서 확립된 “시간에는 오행적 성질이 있다”는 관점을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즉, 송대 명리학은 시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고대적 우주관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개인 차원으로 정교하게 끌어내립니다. 2. 간지 체계의 계승입니다 송대 명리학은 새로운 달력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송대 명리학은 간지 체계를 새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천간과 지지는 이미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동안 사용되어 온 공통 언어였습니다. 송대 명리학자들은 이 기존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연·월·일·시를 간...

명리학의 역사, 은나라 점복에서 송나라 인간학으로

명리학이란 무엇인가 ― 은나라의 점복에서 송대의 인간학으로 ― 명리학을 사주풀이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만, 명리학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에 이르렀는지를 묻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명리학은 단순한 점술 체계가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 문명이 시간과 자연,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축적해 온 사유의 결정체다. 명리학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학문이 아니라, 시대마다 달라진 질문에 대한 응답이 쌓이며 형성된 결과물이다. 이 이야기는 반드시 은나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은나라, 명리 이전에 ‘시간을 묻다’ 기원전 16세기경의 은나라, 흔히 상나라라 불리는 이 시대는 명리학의 출발점이라기보다 그 토양이 만들어진 시기다. 은나라는 점복 국가였다. 왕은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마다 거북 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질문을 새기고 불로 지져 금이 간 모양을 해석했다. 이것이 갑골문이다. 중요한 점은, 이 점복이 개인의 운명을 묻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은나라의 점은 전쟁을 할 것인가, 비가 올 것인가, 제사를 언제 지낼 것인가처럼 철저히 국가적 시간 판단을 위한 것이었다. 즉 은나라 사람들은 이미 “때”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천간이다. 갑골문에는 이미 갑·을·병·정 같은 간지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때의 천간은 오행도, 철학도 아니다. 그저 하늘의 순환을 기록하기 위한 기호였다. 은나라의 관심은 “왜 그런가”가 아니라 “언제 그런가”였다. 명리학은 아직 없었지만, 시간에 대한 집착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주나라, 하늘의 질서를 체계화하다 은나라가 신의 뜻을 묻는 시대였다면, 주나라는 질서를 세우려는 시대였다. 은을 멸망시키고 들어선 주나라는 ‘천명’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하늘의 뜻은 변덕스러운 신탁이 아니라, 일정한 질서를 가진 법칙이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이 시기에 천간과 지지는 본격적으로 체계화된다. 천간은 하늘의 시간 흐름을, 지지는 땅과 계절의 변화를 나...